요즘 나오는 책들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글쓴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을 때,
학생들 상당수가 위인전, 특히 우리나라 위인에 대한 위인전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유인즉슨 "우리나라 위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비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물론,
태어날 때부터 태몽이 벌써 다르니, 도대체 이 세상 사람 같지가 않다" 는 것이다.

저 유명한 베스트셀러인 체 게바라 평전이 두꺼워 읽기 귀찮았던 글쓴이는
만화 위인전 만나 보고 싶어요 - 총을 든 의사 체 게바라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를 보고 나서야 이 책이 인터넷 서점에서
유아/어린이 > 어린이(초등학생) > 어린이 인물이야기 로 분류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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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영화 상영하기 1시간 전에 게바라의 일생을 파악해야 한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만화 위인전에서 체 게바라는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남아메리카를 무전 여행하다
인디오를 포함한 민중들이 처해있는 비참한 현실과 (미국의) 제국주의를 목도하고
아메리카의 아들이 되기로 결심, 그 길로 공산주의 혁명가의 험난한 인생을 시작한다.
길에서 만난 사람, 들판에서 겪은 작은 사건 하나 하나가 모두 그를 혁명가로 단련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글쓴이의 기대와는 달리,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혁명가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물론 땅을 빼앗기고 황량한 사막을 지나는 인디오 부부를 보며 가슴아파 한다던가,
나환자촌에서 헌신적인 의료 봉사를 펼치는 내용이 영화의 주된 요소이기는 하지만,
단지 그것만 가지고 20세기 최후의 게릴라, 전사 그리스도로 불리는
체 게바라의 위대한 전설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미미한 게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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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가 얼마 안 되는 회사 생활에서 들은 경영 개념 중의 하나가 바로 alignment 이다.
즉 기업의 전략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경영 자원이 한 방향으로 합심해야 하며,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자원이 없도록 최적의(optimized) 관리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 역시 낭비 없는 최적의 과정을 거쳐 목표를 이루면서 살 수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체 게바라는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한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만화 위인전에서 보던 젊은 게바라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길에서 만난 사람, 들판에서 겪은 사건 하나 하나가 모두 그를 혁명가로 단련시킨 것은 아니다.
대신 열심히 공산주의 사상서를 탐독하거나 게릴라 전을 도상연습해야 할 그 시간에
베네주엘라의 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얻어먹으려 아가씨들을 열심히 꼬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글쓴이가 재미있게 읽었던 만화 위인전이 초등학생들을 위한 책이었다는 한계가 여기에서 드러난다.
미안하게도, 체 게바라는 위대한 혁명가의 태몽과 함께 태어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 역시 젊은 시절 혁명이라는 무거운 운명과 멀리 떨어진 남아메리카의 눈 덮힌 산 속에서
낡은 오토바이와 씨름하는, 시행착오라는 인생의 굴레를 결코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환자촌의 환자들과 여행 중에 누구나 만날 수 있었던 가난한 인디오들에게서
쿠바의 산 속을 누빈 게릴라 지도자로서의 체 게바라를 어떻게 논리적으로 도출해야 할까?

나환자 거주지역과 의사 거주지역 사이에 가로놓인 아마존 강을, 천식을 무릅쓰고 헤엄쳐 건너는
젊은 게바라의 모습은 "될 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 다르다" 는 메시지를 전하는 장치가 될 수 있지만,
이 장면만 놓고 본다면 게바라는 청진기를 든 슈바이처 박사가 되어야 했다.
솔직히 슈바이처 박사와 게릴라 사이에는 아마존 만큼이나 넓은 강이 가로놓여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특징이 드러난다.
이들이 내린 위대한 판단은 충분한 모집단에서 합리적으로 도출해낸 통계와는 거리가 멀다.
보통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고 마는 주위에서 쉽게 겪을 수 있는 보통의 경험들,
논리적으로 연결하기 힘든 조각조각 파편화된 경험들 속에서도 놀라운 통찰력으로
인간과 세계와 우주 속에 숨어있는 질서를 간파해내곤 하는 것이다.

사회의 냉대에 시달리는 나환자들과 독재 정권에 신음하는 쿠바 민중들,
그리고 성실하고 마음 착한 의대생과 무장 투쟁의 게릴라 지도자를 연결시켜 줄
겉으로는 논리적이지 않아보이는 연결 고리가 바로 여기에 숨어있는 게 아닐까?







게바라가 눈 덮힌 산 속에서 낡은 오토바이와 씨름하거나
베네주엘라의 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얻어먹으려 아가씨들을 꼬시는 것처럼,
글쓴이 역시 회사 사무실에서 고장난 프린터와 씨름하거나
지나가는 예쁜 여자 수강생을 쳐다보며 영어학원에 앉아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체 게바라가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쿠바 정부의 2인자 대신 볼리비아의 정글을 선택했던,
게바라의 삶을 진정 위대하게 만들었던 나이 37세의 그 어느 날,
글쓴이는 과연 지금의 시행착오를 무엇이라 변명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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