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지사키류의 만화로서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진 봉신연의!
사실 이 봉신연의가 중국의 고전 문학 중 하나이며, 3대 기서(서유기, 삼국지, 수호지)를 능가하는 엄청난 인기를 누려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봉신연의는 고대 중국, 은. 주 교체기를 배경으로 한 동양적 SF 판타지물이라고 할 수있다. 서유기를 능가하는 스케일과 삼국지를 능가하는 인물들. 만화에도 등장하는 수많은 선인, 보패, 도술, 진법 등이 고스란히, 아니 소설에서 더욱 상세히 묘사돼있는 모습은 우리의 놀라움을 자아낸다.
이런 소설이 어째서 지금껏 우리에게 생소해왔으며, 아직도 중국의 4대 기서에 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실제 역사적 인물이기도 한 태공망이 어떻게 판타지물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만화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이제부터 중국 원조 고전인 봉신연의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낚시왕 강태공. 그의 실체는?
지금도 훌륭한 낚시꾼의 대명사인 강태공. 특히 요즘 인터넷 낚시가 성행하면서 허황된 정보로 누리꾼을 '낚는' 사람을 일명 강태공이라고 부르고 있다.
강태공은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인 BC 12세기경 사람으로, 본명은 강상(姜尙), 자는 자아(子牙)이고 염제신농의 후손이라 일컬어진다. 봉지의 이름에 따라서 여상(呂尙)이라고도 한다.
그는 70이 넘도록 정계에 등용되지 못하고 오직 공부만에만 정진하여, 참다 못한 그의 아내는 그를 버리고 재가해 버릴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 서백창(훗날의 문왕)이 사냥을 나가려다 점을 쳐보니 '얻는 것은 용도 아니요, 이무기도 아니요, 호랑이도 아니고 곰도 아닌 사람이다.'라는 희안한 점괘가 나왔다. 이상하게 여긴 서백창이 위수 강가를 거닐다가 만난 것이 바로 낚시를 하던 강상, 즉 강태공이었다.
서백은 그에게 "태공(서백창의 조부)께서 머지않아 큰 성인이 나타나 우리 주(周)를 번창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당신이로군요. 당신이 태공께서 기다리시던 그 분입니다." 라고 하여 그를 태공(太公)이 기다린(望) 자, 즉 태공망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훗날 서백의 부하가 강태공의 낚시대를 살펴보니, 바늘이 곧게 펴져 있어서 도저히 물고기를 낚을 수가 없었다. 강태공은 낚시를 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그 자리에서 서백을 기다리기 위해 미끼 없는 낚시대로 세월을 낚고 있었던 것이다.
서백의 스승이 된 강태공의 활약은 눈부셨다. 70이 넘은 나이로 그는 문왕의 군대를 전두지휘했으며, 은나라를 쳐서 전복시키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역성 혁명을 성공시켰다.
또한 그는 후대 병법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육도(六韜)'라는 병법서를 썼다. 그는 문왕. 무왕 2대에 걸쳐 주나라를 섬기다가 제나라의 왕에 봉해져, 대대손손 그 땅을 다스리게 된다.
그렇다면 소설 속의 태공망은 어떻게 그려지는가?
소설 속의 태공망은 만화에서처럼 선인으로, 천계의 봉신계획을 수행할 사자로서 지상에 내려오게 된다.
봉신계획이란, 인간 중에 자질이 뛰어난 자, 그리고 선인 중에 자질이 떨어지는 자를 신으로 봉해(봉신) 신들이 다스리는 '신계'를 창설하고 천계-신계-인간계의 새로운 구조를 만들려는 선인들의 계획을 말한다. 사람이든 선인이든 봉신을 하기 위해선 우선 당사자의 목숨을 빼앗아야 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전쟁이 일어나야 했으며, 그래서 일어난 것이 인간계에서는 은주역성혁명, 천계에서는 산악파와 해도파(만화에서 곤륜과 금오도)의 전쟁이었다.
천계의 명을 받고 내려온 태공망은, 주나라의 서백을 도와 은주역성혁명을 주도하며 수많은 뛰어난 인재를 봉신(그러나 지상에선 무도하게 학살)하게 되며, 천계에서 곤륜의 계획을 알아차린 절교(요괴들로 이루어진 또다른 선인의 종파. 해도파)가 천교(산악파)에게 반항을 하나 천교 선인들의 엄청난 먼치킨 능력에 압도당해 몰살을 당하고 만다.
물론 만화에서처럼 태공망이 사실 왕천군과 한몸이고, 본체는 복희라느니 하는 설정은 나오지 않는다. 여와나 달기도 비교적 가볍게 등장한다. 만화의 내용은 순전히 작가의 SF적 상상력이 덧대어졌을 뿐이다.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별 볼일 없는 소설'
상주연의, 봉신방, 봉신방연의. 이는 모두 봉신연의를 일컫는 다른 말들이다. 이렇듯 봉신연의는 하나의 고정된 제목이 아니라 여러 다른 제목과 다른 버젼으로 알려져 있다.
봉신연의는 3대 기서보다도 오래된 고전이며, 그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지는 한말, 서유기는 당, 수호지는 송) 성문화되지 못하고 구전으로만 전해져오다가 명나라 중엽에 이르러서야 '상주연의'라는 제목으로 처음 집대성이 되었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중국 4대 기서를 꼽으라고 하면 삼국지, 서유기, 수호지에다가 추가 금병매라는 작품이 들어간다.
그런데 이 금병매라는 소설을 살펴보면, 수호지에 등장하는 하나의 에피소드를 확대한 것 뿐이다. 게다가 내용도, 서문경과 그의 여러 부인들 간의 애정 전선을 다룬 내용으로, 통속적이며 야하기 그지 없는 찝찝한 내용으로, 기서(奇書)라고 불릴 판타지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4대 기서에 봉신연의를 치지 않고 대신 이 금병매라는 소설이 들어가게 된 것일까? 이것은 공자와 공자를 맹신하는 유학자들의 소행이다.
봉신연의는 도교적인 색채가 강한 소설이다. 우선,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대부분이 선인이며 도술을 쓰고 조화를 부린다. 담겨져 있는 내용 또한 도교적인 빛이 강하다. 봉신연의의 태공망은 군왕을 받들어모시지 않으며, 천명에 대해 회의하고, 권력에 대해 냉소한다. 이는 유가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서유기는 불교적인 소설이며, 삼국지는 역사적인 내용 위에 나관중의 상상력을 약간 덧입힌 것 뿐이다. 수호지 역시 도사들이 등장하고 술법을 부리지만 이는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한 연출 효과일 뿐, 도교적인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봉신연의는 달랐다. 때문에 봉신연의는 유학자들의 의도적인 은폐와 삭제에 의해 정규 문서에서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고, 훗날 유가의 목소리가 약해진 명나라 중기에 가서야 책으로 편찬되었다.
<사당에 놓여진 강태공의 상. 아직도 중국인들 사이에서 그는 제액을 하는 신령한 존재다.>
<공자의 은폐 공작으로 인해 태공망은 영영 역사에서 지워질 뻔했다.>
봉신연의에 대한 유학자들의 질시에는 태공망에 대한 공자의 개인적인 증오도 한몫했다. 공자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치가는 무왕의 동생 주공단이었고, 공자는 그를 군자의 거울로 삼았다. 그러나 태공망의 업적은 여러모로 주공단의 빛을 바래게 하기에 충분했다. 태공망은 공자가 성인으로 생각하는 무왕에게(그것도 자신의 주군에게) 자기가 타는 수레를 끌게 하였고, 공공연히 유학자들을 억압한 장본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유학자들은 지극한 이상주의자인 데에 반해 태공망은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주공단이 세웠으며 유가적인 통치 이념을 갖고 있던 노나라는 날이 갈 수록 쇠약해졌으나, 태공망의 제나라는 고도의 성장으 이룩해 마침내 춘추오패(春秋五覇: 춘추 시대를 제패한 5명의 패자)중 첫번째인 환공을 배출하게 된다. 게다가 태공망은 한족이 아니라 동쪽 이민족인 강족 출신이었다. 이모저모로 태공망은 공자의 비위에 거슬리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은 원인으로 유교를 숭상하는 후대의 왕조들과 유학자들은 봉신연의의 구전을 철저히 금지했으며,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별 볼일 없는 소설'이라며 비난을 했다.
그러나 위에서 금지를 하면, 기층인 서민들 사이에선 더욱 인기를 얻는 법. 마치 몰래 보는 도색서적이 더 재미있듯, 봉신연의는 수천년동안 민중들 사이에 대인기를 누렸다. 또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그때마다 상상력과 설정이 덧대어져 3대 기서를 능가하는 최고의 판타지 작품이 되었다. 봉신연의에 등장하는 36천강성, 72지강성은 수호지에서 패러디 되었으며, 봉신연의의 등장인물인 나타는 서유기에도 등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명대에 책으로 출간되면서 봉신연의는 중국 최고의 판타지 소설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봉신연의, 현대에 재탄생하다.
현대판 봉신연의로는 안능무가 평역한 소설책과 후지사키류의 만화 봉신연의가 대표적이다.
이 중, 만화 봉신연의는 본래의 내용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지만 안능무 평역의 봉신연의는 본래의 내용을 현대적 해석으로 충실하게 옮겨놓아 읽기가 용이하다.(책광고 하는 건 아니다 =ㅅ=;;) 이외에도 요즘은 봉신연의등 중국 고전의 평역이 활발해지면서 거듭 새롭게 재탄생하고 있다.
봉신연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의 판타지에 가장 가까운 소설이다. 봉신연의를 처음살펴보는 사람은 '고대 중국인들도 이런 상상을?'라고 생각하며 놀라게 될 것이다.(소설의 나타는 지금으로 따지면 인조인간이며, 선인들이 타고 다니는 금강역사 지금의 모빌 슈츠와도 같다. 이외에 선인들이 쓰는 보패 중엔 광선을 쏘거나 미사일 비슷한 것을 발사하는 종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인간의 상상력은 똑같았으며, 그 상상력은 곧 기서, 혹은 판타지 소설의 탄생을 불러왔다. 비단 중세 서양이 배경이고, 마법사와 검사가 등장하는 소설만이 판타지는 아니다. 인간의 환상적인 상상력과 초현실적인 소재가 들어가 있으면 무엇이든 판타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황당무계하지만 천년이상이나 민중에게 사랑을 받을만큼 기발한 상상력과 장중한 스케일로 무장한 봉신연의. 어쩌면 이 소설이야말로 현대의 수많은 판타지 작품들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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